2026-05-11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일리야 레핀, [욥과 그의 친구들].

2026-05-11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일리야 레핀, [욥과 그의 친구들].

2026-05-11 [욥기] 완독. 공동번역판으로 읽었습니다.

일반 비종교인으로서 종교서적을 읽는 것은 난이도가 높은 일입니다. 해당 종교 내의 독자들이 공유하는 맥락을 어느 정도 숙지한 채로 읽어야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없으며, 해당 맥락을 일정 이상 수준으로 숙지하는 순간 종교인이나 학자의 위치에 서기 때문이죠. 더불어 옛날 시대 구전으로 전해져 온 경전들의 경우 암송을 쉽게 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구문의 반복이 많고, 오래된 문체를 의도적으로 교정하지 않기 때문에 읽는 난이도를 더욱 올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욥기]는 그걸 감안하고도 읽어볼 만한 문헌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적으로 상장히 재미있는 시도가 많이 들어갔어요. 저는 [욥기]를 상당히 초창기의 미스터리 문학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도서추리’, ‘다중추리’, ‘안티미스터리’, ‘동기에 대한 추론’, ‘메타미스터리’ 등을 모두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사탄과 야훼가 내기를 합니다. 우스 땅의 욥이라는 신실한 사람에게 고난을 주면 그 신실함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사탄이 야훼에게 도발하자, 야훼는 욥의 모든 것을 앗아가되 그의 목숨만은 건드리지 말 것을 명합니다. 욥은 그의 일꾼들, 소, 나귀, 양, 낙타, 그리고 자녀를 모두 잃고, 더 나아가 온몸에 부스럼이 날 때까지 하느님을 욕하지 않습니다. 욥의 세 친구 데만 사람 엘리바즈,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바르는 그런 욥을 찾아 일주일 내내 그와 함께하며 그를 위로하나, 이윽고 이야기는 욥과 세 친구 사이의 언쟁으로 번집니다.

본작의 핵심은 욥과 세 친구의 언쟁 내지는 다중추리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내 죄가 없는데 어찌 이렇게 벌을 받아야 하느냐” 와 “벌을 받은 걸 보니 너에게는 죄가 있을 것이다” 라는 두 논의가 충돌하는데, 작중에서도 지적하듯 이 논증을 갑자기 모든 것을 잃고 길바닥에 나앉은 사람이랑 하는 건 정당성과 결론을 떠나서 좀 그렇죠. 특히 이 논증이 답을 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는 점이 더욱 그렇습니다.

미스터리 문학적 접근에서 [욥기]의 탐정 역할을 하는 부스 사람 엘리후는 이 끝없는 논증을 차단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제안합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죄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서 뭐할래?”에 가깝죠. 결국 야훼라는 메타적 존재를 끌어와 논리를 구성하려 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으므로, 해당 메타적 존재를 소거하고 니 할일이나 잘하세요 - 라는 깔끔한 논증입니다. 이 논증은 결말부에서 야훼 본인이 튀어나와 해당 사실을 인증함으로서 정점을 찍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메타적 존재의 메타성을 그것이 현현해서 직접 인정하고, 그걸 받아들인다는 구성 말이죠. 그렇지만 이 흐름마저도 결국 ‘알 수 없는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니 니 일이나 잘 하십시오’이라는 깔끔한 메시지로 향합니다. 사실 결말 부분의 경우 비종교인 입장에서는 이게 전체 메시지를 망가트릴 수도 있는 기이한 전개라고 생각합니다(종교적 측면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부분이 오히려 아이러니함을 키워 주기도 하니, 읽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오래된 글이라는 점과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점, 솔직히 [욥기]가 도서추리/다중추리/안티미스터리/동기에 대한 추론/메타미스터리라는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점에서 추천하기는 어려운 작품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구성 자체는 재미있어요.

원래는 [욥기]를 바탕으로 글을 한 편 구상해보고 싶어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잘 고민해 보니 유사한 전개를 따르는 작품이 하나 있더군요. 해당 작품과 비교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 [욥기]의 감상평을 먼저 쓴 것인데, 정작 이걸 쓰고 나니 새로 뭘 쓰기 귀찮아졌습니다. 언젠가 의욕이 생기면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