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3 알라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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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3 [여왕님과 나] 완독.

우타노 쇼고는 좋을 때와 나쁠 때가 극명히 갈린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밀실살인게임 왕수비차잡기]는 좋은 쪽으로 이걸 증명했고, 이 책은 안 좋은 책으로 증명합니다.

소재를 지적하는 분이 제법 계시는데, 이 정도 소재가, 특히 추리소설에서, 문제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타노 쇼고는 기본이 되는 작가라서 재미도 어느 정도는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의 시도도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저는 이 시도를 미리 알고 읽었는데, 모르고 읽었어도 큰 차이는 없었을 듯합니다). 문제는 왜 이런 시도를 했는지가 불투명하다는 거에요.

추리소설으로써 이것이 유의미한 시도인가, 하면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그렇게 놀라운 시도도 아닌데 새롭다는 인상도 전혀 못 받았습니다. 장르소설의 관점을 버리고 바라본다 해도 그다지 남는 것이 없습니다. 관련 소재를 조금 더 정교하게 다룬 작품들이 제법 있지 않나요? 작품 자체는 괜찮은데, 작품에서 시도한 기교가 작품을 잡아먹었다는 인상이네요. 기교를 부릴 거면 확실하게, 라는 깨달음을 줍니다.

추천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읽지 말라고 뜯어말릴 정도는 아니지만요.


이 지점 밑으로는 책에 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편의상 중간 부분을 망상 파트, 앞뒤 부분을 현실 파트라고 칭하겠습니다.

망상 파트의 구성은 제법 괜찮습니다. 가와이 라이미와 가토 루나를 착각하게 만든 것도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을 아예 떼어 둔 상태에서 읽는다면 무난하다고 평가했을 것 같습니다. 성형수술이라는 극단적인 설정과 자식을 성형하도록 내버려두는, 오히려 권장하는 어머니 등이 비현실적이라서 이 책에 집어넣은 걸까요? 그렇다기에는 회피할 방법이 제법 있어 보이는데요.

이 책의 진짜 문제는 현실 파트입니다. 신토 카즈마가 아이를 납치해 죽이고, 또 부모를 죽이고, 그 죄책감에 시달리다 망상의 세계로 떠난다. 알겠습니다. 그게 망상 파트와 무슨 관계가 있죠? 망상 파트에 아무 내용이 들어가도 전혀 상관 없는 라인이잖아요. 물론 망상이 다 그런 거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이건 누가 한 망상을 옮긴 게 아니고 망상을 글로 쓴 거죠. 압도적인 망상 세계와 그에 비해 빈약하기 그지없는 현실의 격차를 강조하려는 의도였으리라 생각하긴 하는데, 현실 파트를 너무 줄이다 보니까 이야기가 헛돌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망상 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캐릭터는 괜찮습니다. 카즈마와 라이미라는 캐릭터는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카즈마는 항상 일관되게 기분이 나쁘고, 라이미는 전형적 캐릭터 디자인을 잘 따르고 있죠. 간간히 나오는 에무에 대한 묘사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일련의 사건 리스트도 긴장감을 조성하게 잘 만들어져 있었고, 진상이 밝혀지는 부분도 설득력이 있고 반전이 괜찮았습니다. 논리적인 접근이라는 측면에서는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그걸 집중한 작품이 아니라 괜찮습니다. 일반 대중에게 잘 먹힐지는 의문이지만 특정 수요층에게는 호평받을 법해요. 추리소설 매니아라거나, 일본 서브컬처 매니아라거나.

결과적으로 정말 의문인 것은 이 두 가지 특성을 만족시키는 저 자신에게조차 그렇게까지 강한 어필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네요. 중반부가 망상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읽어서 전체적 내용을 붕 뜬 채로 읽어서일지도 모르고, 카즈마가 너무 기분 나쁘고 라이미가 너무 조형된 캐릭터라서 그럴지도 모르며, 어쩌면 그냥 현실 파트에 대한 악평이 들러붙은 걸지도 모르죠. 그나저나 중반부가 망상이라는 건 중간에 대놓고 가르쳐 주잖아요? 이게 무슨 엄청난 반전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