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1 알라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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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1 [메르카토르는 이렇게 말했다] 완독.

단편 [죽은 자를 깨우다], [규슈 여행], [수렴], [대답 없는 그림책], 그리고 [밀실장] 다섯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등장하는 탐정 메르카토르는 [날개 달린 어둠 - 메르카토르 최후의 사건]과 [메르카토르와 미나기를 위한 살인]에도 등장합니다.

좋습니다. 좋은데요. 정말 좋아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야 유타카의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이 정도면 다른 책들도 엄청나게 궁금해집니다. 걸작의 범주에 넣을 만합니다.

재미있었던 순서대로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대답 없는 그림책]은 걸작입니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밀실장]도 훌륭해요. [죽은 자를 깨우다]는 도입부를 장식하기에 충분하고, [규슈 여행]도 뚜렷하게 좋은 작품입니다. [수렴]이 가장 아쉬웠지만, 좋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상대를 봐가면서 추천할 작품입니다. 그렇지만 아쉽네요. 훌륭하기 그지없어서 아무에게나 추천하고 싶은데.


이 지점 밑으로는 책에 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이 작품에서 메르카토르 아유의 추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네 번째 단편 [대답 없는 그림책]의 범인을 추정해 본 사람이 있더라고요. 핵심이 되는 논증은 이렇습니다. 오토리 아스카는 4시 20분부터 4시 30분 사이에 알리바이가 없습니다. 이를 통해, 첫 방송을 들은 아스카가 1반에서 분위기를 보다가, 나스노가 교무실로 향하지 않자, 과학 준비실 상황을 보러 갔고, TV 소리가 들리자 케이블이 끊어진 줄 모르던 아스카는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호출에 응하지 않았다고 판단, 3반으로 이동합니다. 이후 두 번째 방송을 듣고 과학실로 돌아오자 TV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이를 통해 나스노가 교무실로 갔다고 판단한 이후 침입을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메르카토르의 말을 뒤흔들지 않는 것은 “방송이 두 번이나 나오면 (…) 졸다가 방송을 못 들었을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으니 “아무런 확인도 없이 준비실에 숨어드는 건 주저할 거”라는 주장이 조금 빈약하고, “나스노가 졸지 않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음을 확인”했다면 이것이 회피된다는 주장입니다.

부질없습니다. [대답 없는 그림책]에는 범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메르카토르 아유의 추리는 반드시 옳습니다. 논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메르카토르 아유의 추리를 의심할 요소는 마지막 작품 [밀실장]에 있습니다. 작중에 서술된 내용을 보았을 때, 범인은 메르카토르이거나 서술자 미나기입니다. 서술자 미나기가 범인이라고 가정하면 이 작품 전체의 서술을 신뢰할 수 없어집니다. 탐정 메르카토르가 범인이라고 가정하면 이 작품 전체에서의 그의 발언을 신뢰할 수 없어집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제가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없죠. 따라서 마지막 사건은 없던 일입니다. 그러면 미나기의 서술이나 메르카토르의 추리를 의심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따라서 메르카토르 아유의 추리는 반드시 옳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요? 다른 이유를 제시해볼까요? 메르카토르 아유는 작중에서 자신의 논리는 항상 맞으며 정답률은 백 퍼센트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메르카토르 아유의 추리는 반드시 옳습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메르카토르 아유의 말이 허세이거나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그의 추리는 (일부러건 실수로건) 종종 틀리고, 그가 범인으로 지목하는 사람이 범인이 아닌 경우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위에서는 좀 까는 식으로 썼지만, 당연히 그런 읽기도 가능합니다). 다른 한 가지는 메르카토르 아유의 추리가 항상 옳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의 추론에는 빈틈이 없고, 그가 지목한 범인은 정말로 범인입니다. 이 둘 중 뭐가 진실인지 구별할 수 있나요?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네 번째 사건, [대답 없는 그림책]에서 피해자는 살해당했고, 메르카토르 아유는 범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추리했습니다. 이는 명백히 모순이므로 메르카토르 아유의 추리는 틀렸고, 따라서 전자와 같은 읽기 방식이 옳을 수밖에 없다고 말이죠. 그런데 두 번째로 제시한 읽기 방법에서 이걸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작중에서는 메르카토르 아유가 제시한 추리의 옳음이 논리에 선행하고, 따라서 논리가 붕괴되었다고 설명하면 됩니다. 그런 규칙이 책 안에 어디에 나와 있냐고요? 메르카토르 아유의 추리가 반드시 옳다는 규칙은 무시하면서, 저 규칙은 고작 책 안에 적혀있지 않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것은 정당한가요?

이 책을 읽을 때 (실은 무슨 책을 읽건 간에) 두 번째 읽기 방식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책의 대단한 점은 지금과 같은 서술 방식을 택함으로써 두 번째 읽기 방식을 오히려 권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누가 범인인가?”에서 나올 수 있는 부조리한 대답들 - “범인은 죽은 사람이었다”, “범인은 없다”, “그런 사건은 애초에 없었다” 등을 제시함으로써 이 작품은 두 번째 읽기 방식으로 읽는 것을 권유합니다. 받아들이기 어렵죠. 애초에 (이 책이 아니라면) 좋은 읽기 방식도 아니고요. 그러나 미스터리 소설에 있어서 탐정의 역할을 극대화한 이 작품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탐정의 역할에 의문이 던져지는 점이 아주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