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0 알라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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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2 [일곱 번 죽은 남자] 완독.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1995년 작품으로, 특수설정 미스터리 계열, 그 중에서도 타임루프 설정을 사용하는 쪽에서 초기작이자 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수설정 미스터리라는 개념이 확립되기 한참 전에 나왔는데도 대단히 훌륭한 작품입니다. 약간 과장을 섞자면, 특수설정 미스터리에서 타임 루프라는 걸 더 사용해봤자 이 작품의 주석에 불과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걸작, 또 걸작입니다.

글을 굉장히 맛깔나게 적네요. 일본 특유의 만담도 재미있었고, 분명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고 또 가족간의 후계상속권 문제와 같은 심각한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도 그걸 전혀 무겁지 않고 가볍게 다루는 작가의 솜씨가 정말 대단합니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개성이 있고, 또 각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들에게 이야기를 휘둘리지 않으면서 또 이야기를 세세히 풀어내는 필력이 압도적입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에는 [인격 전이의 살인]이 있는데, 이것도 야마구치 마사야의 [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과 함께 특수설정 미스터리 초기 걸작으로 꼽히는 모양입니다. 이걸 제외한 작가의 다른 작품은 이것만 못하다는 평이 있어 조금 고민입니다만, 이 또한 이 작품에 대해, 그리고 이 작가에 대해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겠지요.

이 책을 읽은 것은 4월 12일이고, 스포일러 포함 후기를 쓰고 있는 것은 6월 10일입니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후반부를 다시 읽었는데, 과연 걸작, 또 걸작.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은 대단한 작품입니다.

누구에게나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이 글을 통해 특수설정 미스터리에 관심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지점 밑으로는 책에 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주인공 히사타로는 같은 날을 아홉 번 반복하는 특이 체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능력이 아니라 특이 체질인 이유는 이것이 자신의 의지대로 발동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 날에 발동하는 것이라는 점이죠. 다만 반복되는 시간동안 기존 루프에서 일어났던 일에 개입하여 그 결과를 바꾸어 놓는 것은 가능합니다. 1월 2일, 히사타로는 가족과 함께 할아버지 레이지로의 유산과 회사 경영권을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족 모임에 참석합니다. 그런데 하필 그 날 루프에 빠집니다. 더 심각한 것은, 두 번째 루프에서는 첫 번째 루프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할아버지의 살해죠. 히사타로는 할아버지의 살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범인을 추리해내고, 범인을 최대한 살인 현장에서 멀리 떨어트려 놓아 할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지 확인하려 합니다.

두 번째 루프의 범인은 큰형 후지타카와 작은사촌누나 루나였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루프에서 이 둘을 할아버지로부터 떼어 놓고 감시하고 있으니 큰사촌누나 마이가 할아버지를 살해합니다. 네 번째 루프에서는 작은형 요시오가, 다섯 번째 루프에서는 어머니 가미지가, 여섯 번째 루프에서는 비서 츠치야가 살해합니다. 온 가족을 불러모아 이제야 할아버지가 죽지 않겠다고 확신한 일곱 번째 루프에서는 할아버지가 실족해 죽습니다. 할아버지를 지켜보며 담판을 짓는 여덟 번째 루프에서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할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죽고요. 그리고 이 모든 루프 속에서 히사타로는 가족들의 연애사와, 결혼 문제와, 사랑하는 도모리 씨의 마음과… 아무튼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아홉 번째 루프에서, 지금까지의 정보를 모두 끌어모아 할아버지의 죽음을 막아내고, 할아버지는 돌아가시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마무리되면 별 의미가 없죠. 보이지 않는 변호사 무나카타의 문제가 미심쩍게 남아 있었습니다. 이후 도모리와 데이트를 하게 된 히사타로는 오늘이 루프된 1월 2일의 다음날인 1월 3일이 아니라, 1월 4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트릭은 별다를 것이 없습니다. 히사타로는 1월 2일을 반복한 것이 아니라 1월 3일을 반복한 것이고, 1월 2일이 반복되었다고 착각한 것은 할아버지의 약한 치매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그럼에도 아홉 번의 루프를 반복했다고 착각한 이유는 세 번째 루프에서 히사타로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잠에서 깨자마자 실족해 죽어버렸기 때문이고요. 그러나 여기까지 접근하는 도모리는 제법 논리적입니다. 무나카타 씨의 문제, 1월 2일과 3일의 트릭, 아홉 번의 루프까지. “여덟 번의 루프로 갑작스럽게 바뀌었다는 가설도 물론 가능하지만, 그 가설이 없어도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도모리는 대단히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것은 도모리의 추론이 히사타로에 대한 굳은 믿음에서 온다는 점도 포함됩니다.

도모리가 히사타로의 마음을 이미 확인했다는 사실, 히사타로가 그것을 깨닫고 부끄러워 하는 것, 도모리 또한 히사타로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부분까지… 이 부분에서는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흐뭇하게 끝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을텐데, 그 이후 후치가미 가문답다고나 할까, 우당탕탕 말썽이 일어나는 모습으로 아주 깔끔하게 글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정말 감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