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3 알라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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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8 [땡땡자는 죽어주세요] 완독.

문장이 나쁘다고 나쁜 소설은 아닙니다. 이야기가 별로라고 나쁜 소설도 아니고, 재미가 없다고 나쁜 소설도 아니죠. 그러나 불행히도 이 모든 것을 갖춘 책은 나쁜 소설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등장인물이 상당히 많이 존재하고, 각 등장인물에 엮인 사건도 굉장히 복잡합니다. 이걸 그리 잘 헷갈리지 않게 풀어낸 것은 좋은데, 문제는 후반에 가면 그 장점도 좀 퇴색됩니다. 갑작스럽게 사건이 진행되며 배경이 변하더니 완전히 처음 보는 장소에 독자를 데려다 놓고 처음 보는 이야기를 합니다. 프롤로그에서 든 기분이 에필로그-쿠키에서 해소되는 것을 기대했는데, 프롤로그에서 든 기분과 완전히 동등한 느낌을 받는 건 신선하네요.

전체적인 구성은 시라이 도모유키의 [엘리펀트 헤드]를 참조한 느낌이 강하지만, 이 책과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은 다른 책이 있습니다. 황유석의 [마지막 해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전반적으로 이 책의 느낌을 받았어요. 시종일관 불길한 분위기와 뭔가 허무맹랑해보이는 과학기술, 픽픽 죽어나가는 사람들. 그렇지만 [마지막 해커]에서는 나름대로의 카타르시스가 존재했는데 이 책은 그렇지 못하네요.

작가분께서는 한국의 시라이 도모유키를 꿈꾸고 계신다고 적었는데, 시라이 도모유키의 장점은 기괴한 설정이나 인명경시, 복잡한 이야기구조가 아닙니다. 이걸 한데 묶어서 써내는데 독자에게 이 전부를 납득시키는 것이 장점이겠죠. 이 책은 납득이 조금 어려웠습니다. 시라이 도모유키를 지향하신다면 이 부분을 개선하는 것이 좋아보입니다.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입니다. 읽지 않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지점 밑으로는 책에 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작품 초반부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입부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기법입니다. 문제는 이 설명이 궁금증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짜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부분은 아마도 [엘리펀트 헤드]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 같은데, 거기에서는 답답한 느낌보다는 조마조마한 느낌이 들죠.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엘리펀트 헤드]는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나갔지만, 이 책을 읽을 때 저는 이 부분에서 몇 번 책 읽기를 중도포기했습니다.

이야기가 궤도에 오르면 제법 흥미진진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다소 산만하지만(제가 요약을 시도해보려고 했는데 끊임없이 늘어져서 포기했습니다), 읽으면서 사건들이 머리에 들어올 정도는 됩니다. 별 관계 없던 사건들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카타르시스를 주는 부분도 나쁘지 않았고요. 악동 형제 이야기나 고독사 청소부 이수완 씨의 이야기는 제법 좋았어요.

그런데 결말부에서 이 사건들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꼬아놓습니다. 인면충이 왜 나오는지, 인면충으로 시간선이 왜 갈라지는지, 악동 형제들은 그걸 오가면서 뭘 하려고 하는지, 이런 게 감이 잘 안 잡혀요. 후반부를 좀 정리해가며 읽었으면 조금 납득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다크 데빌 정영재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정리해서 읽는 것이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면충이 사건 전체에서 치명적인 역할을 하긴 하지만, 뭔가 카타르시스를 주지는 않아요.

괜찮은 부분들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문장력과 스토리 마무리가 너무 치명적이에요. 등장인물들의 대사에서도 위화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고요. 이를테면 박정민씨의 말투는 경박하고 자기중심적인데, 이게 박정민을 쓰레기처럼 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작가가 가볍게 쓰고 있다는 인상을 주게 합니다. 다른 인물들의 대사와 비교해 보고 난 뒤에야 눈치챈 부분이 있어요.

시라이 도모유키를 언급해서 사건의 해결부에서 논리 전개가 어느 정도인지를 살펴보고 싶어 구매했는데, 논리적인 풀이라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은 부분도 마음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