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6-17 알라딘 홈페이지에서.
2025-06-17 [젤리피시는 얼어붙지 않는다] 완독.
전에 한 번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가 애매했는데, 읽으면서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아마 안 읽었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읽다 말았거나요.
이치카와 유토의 데뷔작입니다. 26회 아유카와 데쓰야상 수상작으로, 일본에서는 대단한 호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2017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에서 3위에 올랐을 정도로, 제법 화려한 데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 뒷면에는 “21세기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장!”이라고도 주장하는데, 전반적인 전개에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떠올리게 만들기는 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진공 기낭을 이용한 비행선 “젤리피시”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입니다. 젤리피시에서의 이야기, 지상에서의 이야기, 그리고 막간 파트가 번갈아가며 서술됩니다. 자칫 복잡하거나 읽기 어려워질 수 있는 구성인데, 읽으면서 그런 느낌은 잘 들지 않았습니다. 추리소설 이전에 소설으로써 아주 잘 썼어요. 사건의 의외성도 나쁘지 않았고, 사건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상당히 치밀하게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구요. 제법 간단한 사실으로부터 추론 가능하다는 점, 그 간단한 추론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마련한 장치 등, 과연 고평가받을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점을 찾아보자면 사건이 너무 복잡하다는 점이 있겠습니다. 성립시키기 위해서 다소 억지를 부리지 않았느냐 하면 할 말이 없을 거라고도 생각해요. 그렇지만 이건 작중에서도 어느 정도 지적한 바 있고,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에서는 어느 정도 허용가능한 수준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아, 굳이 국가명을 R국, U국, C국, M국으로 쓴 것은 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그냥 써도 될 텐데.
마지막 장면은 굉장히 인상깊습니다. 감정을 제법 절제해서 전달하는데, 이게 주는 묘미가 있어요. 미래가 기대되는 작가입니다만 아직까지 단 한 권의 다른 작품도 번역출간되지 않았다는 점이 상당히 아쉽습니다.
추천할 만한 작품입니다. 가볍게 읽기 괜찮아요.
이 지점 밑으로는 책에 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위에서 말했듯, 작중에서는 젤리피시에서의 이야기, 지상에서의 이야기, 그리고 막간 파트가 번갈아가며 전개됩니다. 지상에서의 이야기는 사건 이후 젤리피시 안의 여섯 명이 모두 살해당했다는 결론으로 향하고, 젤리피시에서의 이야기는 각 인물이 어떻게 사망했는지 밝히며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 전개합니다. 확실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전개를 떠올리게 하네요.
이 책에서 위와 같은 제법 복잡한 이야기 전개를 선택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종의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기 때문인데, 작품 후반부에 밝혀지는 사실에 따르면 수사팀은 사이먼 애트우드가 젤리피시에 탑승한 여섯 명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사이먼 애트우드는 시체가 되어 실렸고, 살아서 탑승한 여섯 번째 멤버는 에드워드 맥도웰이었습니다. 리베카 포덤의 사망에 관계있는 자, 그리고 그 사망을 은폐한 자, 리베카 포덤의 발명품을 자신들의 것으로 주장해 이득을 취한 자들에게 복수하고자 한 것이죠.
이 전개에서는 젤리피시에 탑승한 다른 사람들의 꿍꿍이가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에드워드가 젤리피시의 기술 원천을 이용하여 필립 파이퍼 교수팀을 위협하자 교수팀의 구성원 중 일부는 R국으로 망명할 계획을 세웁니다. 마침 에드워드가 R국에서 보낸 메시지로 위장해 이들에게 기술 유출을 권유하자, 네빌, 크리스, 사이먼은 젤리피시를 타고 R국으로 망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망명 이후 조국인 U국에게서 꼬리가 잡힐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들이 사고로 인해 사망 혹은 실종된 것으로 위장하려는 작전을 세우는데, 이를 위해 두 대의 젤리피시를 사용하고, 린다, 윌리엄, 그리고 필립 파이퍼 교수를 다른 한 대의 젤리피시에 태운 다음 추락사시키려 합니다.
이런 계획 속에서 사이먼 애트우드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고, 계획 참여를 거부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네빌은 젤리피시를 개발하던 별장에서 사이먼을 죽여 묻어버립니다. 에드워드는 이 시체를 파내 아이스박스에 담고, 이후 젤리피시에 탑승하여 필립 파이퍼 교수를 독살, 젤리피시가 불시착하자 네빌을 독살하고, 이후 공포로 산탄총을 들고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던 크리스를 윌리엄의 도움을 받아 제거합니다. 마지막으로 린다를 살해한 뒤, 사이먼의 시체를 이용해 윌리엄을 공황 상태에 빠트리고 살해합니다. 이후 젤리피시를 불태우고 자신은 남은 젤리피시 한 대로 도망치죠.
이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서술트릭이 사용됩니다. 하나는 젤리피시에서의 이야기인데, 젤리피시가 두 대 존재한다는 사실이 서술되지 않습니다. 결말을 알고 난 뒤 읽어 보면 어느 정도 떡밥은 뿌려져 있어요. 그렇지만 쉽게 눈치채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다른 하나는 지상에서의 이야기인데, 지상에서 파악하고 있는 여섯 번째 탑승자가 사이먼 애트우드라는 사실이 서술되지 않습니다. 이 두 개의 서술트릭을 교묘하게 숨겨가며 이야기를 진행하는 솜씨가 제법입니다.
그렇지만 작중에서 지적하듯, 범인 에드워드의 작전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실패 요소가 제법 있었죠. 뒤틀린다 해서 크게 영향이 없는 부분들이 많습니다만. 이를테면 네빌의 사망에서 꼭 네빌이 죽을 이유는 없었으니까요. 사실, 에드워드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자신의 존재를 지웠는지는 의문입니다. 들켜도 그만이지만 안 들키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라고 이해했어요.
“젤리피시는 두 대 있었다”를 증명하는 것은 두 가지에 의존하는데, 바로 목격자 증언과 불탄 젤리피시의 잔해가 남쪽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후자는 증거로써는 다소 약하지만, 전자가 보강해주니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동항법장치가 그렇게 정확하게 착륙지점을 유도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에요. 작중에서도 운에 맡겼다고 말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