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0 알라딘 웹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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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10 [미스터리 클락] 완독.

단편 [완만한 자살], [거울나라의 살인], [미스터리 클락], 그리고 [콜로서스의 갈고리발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방범 탐정 에노모토 시리즈 중 하나로, 첫 번째 작품 [유리 망치], 두 번째 작품 [도깨비불의 집], 그리고 세 번째 작품 [자물쇠가 잠긴 방]에 이은 네 번째 작품입니다. [자물쇠가 잠긴 방]은 기존에 읽은 바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네요. 추후 다시 읽으면 기록하겠습니다.

본 작품은 네 가지 서로 다른 밀실을 제시하고 에노모토가 이를 해결하(며 준코가 헛다리를 짚)는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단편에서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는 초기에 제시해 주고 “어떻게”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작품 자체의 퀄리티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아요. 문제는 아마 작가의 코멘트나 홍보일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퍼즐러 작품의 재미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는데, 이 책의 작품들이 퍼즐러 작품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구체적인 비판은 이후 스포일러 포함 후기에서 늘어놓도록 하고, 재미있었던 순서대로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완만한 자살]이 가볍게 읽을 수 있고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콜로서스의 갈고리발톱]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요(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친구가 이 단편의 평을 듣고 싶다며 읽기를 제안해서입니다). 표제작인 [미스터리 클락]은 제법 복잡한 트릭이 사용되었는데, 뭔가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실은 그렇게까지 복잡한 트릭은 아닙니다. 문제는 [거울나라의 살인]으로, 감히 이 단편집에서, 아니, 올해 지금까지 읽은 추리 소설 중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느 정도 제 기대를 배반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아, 전반적으로 마무리가 그냥 뚝 끝나버렸다는 인상이 강해요. 반전이 핵심인 작품이 아니라서, 이렇게 끝나니 뒷마무리가 찝찝하네요.

전반적으로 추천하기는 어려운 작품일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읽겠다고 말한다면 “본격 추리를 기대하지 말라”는 코멘트는 해 줄 수 있겠네요.


이 지점 밑으로는 책에 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완만한 자살]에서는 야쿠자의 사무실이 있는 아파트(원문에서는 아마 맨션이 아닐까요)에서 사건이 벌어집니다. 굳게 닫힌 방 안에서 사람이 죽었고, 어떻게 이것을 이루어냈는지가 작품의 핵심입니다. 트릭은 상당히 단순해서, “권총과 정확히 동일하게 생긴 물총을 준비하고, 여기에 위스키를 넣어 알콜중독자에게 보여주고, 이후 권총을 두고 간다. 알콜중독자인 피해자는 권총을 물총으로 착각해 입에 쏜다”입니다. 이것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지적되는 것 중 핵심은 “일반적으로 자살하는 사람과 다르게 권총을 입에 물고 쏘지 않았다”는 사실이나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에게서 위스키 냄새가 났다” 등입니다. 추리 자체에는 구멍이 꽤 많은 편입니다만 상관은 없습니다. “어딘가에 물총이 있다”고 가능성을 좁힌 다음 물총을 실제로 찾아냈으니까요. 물총이 발견된다면 범행 방법과 범인은 자연스레 따라나오는 측면이 있죠. 저는 “피해자는 범인이 방을 나설 때 술에 취해 이미 무력화되어 있었고, 이후 시간 딜레이를 만들어 피해자를 원격 조종 장치…인지 뭔지로 죽였다”는 식으로 예측했는데, 이런 예측으로 유도하는 훈제 청어를 어느 정도 의도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잘 읽었어요.

[거울나라의 살인]은 읽으면서 개인적으로는 매우 불만이 많았습니다. 감시카메라로 인해 사건 현장이 밀실이 되었고, 범인이 어떻게 그 감시카메라를 뚫었느냐는 것이죠. 글을 읽다 보면 감시카메라를 뚫었을 것이라는 것은 빤히 보이는데, 어떻게 그걸 뚫었는지는 다양한 상상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결말에서 밝혀지는 진실이라는 것은 다소 어이가 없습니다. 홀로마스크 착시, 순간조광유리 스마트스크린, 거기에다가 편광필터라고요? 음, 그걸 잘 써서 작중에서 나타나는 효과를 똑같이 쓸 수 있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그걸 저희가 어떻게 압니까?

작중에서 꾸준히 의문점으로 제시되는 문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험프티 덤프티의 얼굴을 움직이지 않고 어떻게 통과했는가?”, “어떻게 뒤편이 비쳐보이는 유리 뒤로 몰래 이동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거울에 반사되지 않고 지나갔는가?” 이 세 가지 의문이 해결되면 작품은 완성입니다. 그런데 그 세 가지 의문에 대한 대답이 전부 “범인이 알아서 잘 했습니다”입니다. 이게 본격 미스터리에서 보여줄 만한 관점일까요? 이를테면 편광 필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제점 같은 건 전부 작품 후반부에 “사실은 이랬더랍니다” 식으로 밝혀지지 않나요? 제가 이 단편을 읽은 뒤 적은 메모는 이렇습니다.

자. 밀실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네 벽은 단단하게 지지되어 있고 천장도 바닥도 뚫린 흔적이 없다. 이 건물 안에는 최소한의 환기구만 있을 뿐 입구도 출구도 없다. 이 건물 안에서 사람이 찔려 죽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진걸까? 내가 알려주겠다. 이 건물의 벽은 RDP(Rapidly Drying Polymer)라고 불리는 엄청 빠르게 마르는 물질으로 되어 있다. 벽을 부수고 들어가서 사람을 칼로 찌르고 나온 다음 구멍을 RDP로 막는다. 끝! 이걸 읽고 아 오늘 진짜 재밌는 추리소설 한 편 읽었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나랑은 안 맞는것 같다. 예를 들어서 이 전에 내가 "RDP라는 금세 굳는 물질으로 내 집에 가벽을 세우고 있다가 마주친 사건이다"는 단서를 달았다고 치자. 문제의 난이도는 내려가지만, 적어도 작품 내적인 완성도는 엄청나게 올라간다.

여기에서 뭔가 전달이 되었으면 하네요.

작중의 등장인물들도 매력을 알기 어려웠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다량의 지식도 영문을 모르게 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그럭저럭 괜찮았던 다른 단편들의 평가까지도 같이 내려가게 하는 점이 대단히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