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6-13 알라딘 홈페이지에서.
2025-06-03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완독.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걸작입니다. 과장이 아니라 근 20년간의 작품들 중 읽어본 것만 두고 보면 단연 최고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 어려울 정도네요. 책 뒷면에 적힌 수상 내역이 애매한 것들이 많아서 조금 웃었는데, 웃은 걸 후회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여러모로 요코미조 세이시의 향기가 강하게 납니다. 도조 겐야도 긴다이치 코스케 같은 느낌이 있고, 일본 특유의 닫힌 시골 세계에 대한 묘사도, 시골의 유력 가문에서 집안 내부 문제로 벌어지는 살인들도, 그리고 작중 시대배경도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에서 자주 본 형태죠. 그냥 작가 이름 바꿔 적어놓고 요코미조 세이시 작품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법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끝나면 걸작이 될 수 없죠.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게 과감합니다.
누구에게나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분량이 제법 되지만, 그걸 감수하고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이 지점 밑으로는 책에 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스토리 자체는 단순합니다. 히메카미 촌은 히가미 가문이 꽉 잡고 있고, 그 안에는 이치가미 가, 후타가미 가, 미카미 가가 있습니다. 히가미 가는 장자승계를 원칙으로 하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이치가미 가의 장자가 히가미 가를 잇습니다. 그러나 이치가미 가에 남자아이가 없는 경우에는 후타가미 가를 찾습니다. 만일 후타가미 가에 남자아이가 있는 경우는 그 아이가 장자가 되는 것뿐 아니라, 후타가미 가가 이치가미 가가 되고, 이치가미 가는 후타가미 가가 됩니다. 이러한 구도이니 후타가미 가 입장에서는 이치가미 가의 남자아이들이 고까워 보일 수밖에 없죠.
한편 이 마을에는 아오쿠비 전설이 있습니다. 이치가미 가의 아들이 병약하게 태어나거나 심지어 종종 죽여버린다고 믿어지는데, 아오쿠비에게서 안전하게 키우기 위한 종교적 절차들이 존재합니다. 그 중 하나가 첫 번째 사건의 배경인 십삼야 참배로, 이 사건에서 장자 조주로의 쌍둥이 여동생 히메코가 죽습니다.
이후 조주로가 장성하여 이십삼야 참배를 마치고 신부를 맞는 의식을 치르는데, 의식 중 난데없이 마리코, 조주로, 그리고 후타가미 가의 둘째아들 고지가 살해당합니다. 이 과정에서 시동 요키타로는 사위스러운 집안 분위기 속에서 기이한 사건들을 마주하는 한편, 순사 다카야시키 하지메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전체적인 글의 테마는 목에 맞춰져 있습니다. 요키타로가 첫 번째 사건에서 목격했던 목 없는 사람의 형태부터, 시신에 목이 없었다는 소문, 두 번째 사건에서 목이 사라진 마리코와 조주로, 그리고 고지. 이 목이라는 테마를 변주해가며 보여주는 사건의 몰입도는 굉장합니다.
한편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부분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아주 단순한 한 가지 가정, 조주로와 히메코는 서로 바뀌어 있었다는 가정 하나만으로 모든 비밀이 말끔하게 설명됩니다. 이 가정 하에서 첫 번째 사건은 밀실 사건이 아니게 되고, 범인으로 지목될 수 있는 것은 고지 뿐입니다. 더 나아가, 두 번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이미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마리코입니다.
트릭 자체는 단순합니다. 그러나 단순한 만큼 발각되기 쉽지요. 훌륭한 지점은, 이 발각되기 쉬운 트릭을 한순간의 눈빛 교환만으로 묻어두자고 합의한 마리코와 이치가미 가 사이의 합의, 그 순간의 합의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는 점입니다. 이치가미 가 입장에서는 이미 남자 조주로는 죽었고, 어차피 요키타로가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여자 조주로를 누가 죽였는지 적극적으로 알아낼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만 들으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지만, 전체적인 소설의 구성 속에서 이 동기를 아주 설득력 있게 그려나가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이 훌륭합니다.
정말 대단한 것은 이 트릭이 아닙니다(물론 좋습니다만). 트릭 자체는 작중의 단서로 보나 메타적으로 보나 어느 정도 유추해낼 수 있는 범주에 있습니다. 이 작품은 작중작의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히메노모리 묘겐의 [히메쿠비 산의 참극]을 작중작으로 두고, 이후 [독자 투고에 의한 추리], 그리고 [도조 겐야의 추리]를 따로 두어 작품 바깥으로 나오는데, 이 구성이 무의미한 구성이 아닙니다.
작품 후반에 와서야, 이 글을 작성하고 있던 히메노모리 묘겐은 [독자 투고에 의한 추리] 원고를 작성하던 도중 에가와 란코, 정확히는 마리코에게 살해당했음이 밝혀집니다. 이후 도조 겐야가 마리코를 두 번 방문하며 범행을 추궁하고, 도조 겐야조차도 (무언가에 씌였다는 암시가 나오는) 요키타로일 것이라는 진상이 밝혀지며 마무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