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0 알라딘 웹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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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7 [십계] 완독.

[방주]로 놀라운 성과를 거둔 유키 하루오의 다음 작품이죠. 개인적으로는 [방주]도 그렇게 호평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뚜렷한 장점이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십계]에서는 그 장점이 얼마나 발전했을지, 또 단점이 얼마나 해소되었을지에 관심을 가지며 읽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방주]에 존재했던 단점은 조금 해소되었지만, 장점이 많이 사라졌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 작가의 작품은 장점이 너무 압도적이라, 장점이 사라지면 읽을 이유가 제법 줄어듭니다. 차라리 단점이 더 부각되더라도 장점이 극대화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다음 작품으로 [낙원]이 예정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읽어는 볼 것 같지만 기대는 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상대를 보아가며 추천할 작품입니다. 좋아할 사람은 너무 좋아하겠지만, 싫어할 사람들은 아주 싫어할 거에요. 저는 어중간한 위치에 있습니다만…


이 지점 밑으로는 책에 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십계]의 설정은 대단히 빼어납니다. 일반적인 클로즈드 서클에서의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 엎은 설정은 대단히 가슴 두근거리게 하죠. 주어진 공간에서 굉장히 높은 자유도가 주어져 있는데, 상황 몇 가지와 범인의 “계시” 몇 개만으로 범인을 알아내지도 못하고 탈출할 수도 없으며 범인에게 협조까지 해야 하는 상황으로 만들었습니다. 설정만 보면 [방주]보다 훨씬 훌륭해요.

그렇지만 유키 하루오의 고질적인 문제가 또 발목을 잡습니다. 범인은 아홉 명의 사람의 목숨줄을 쥐고 모두를 협박하고, 이 협박은 작품의 대전제입니다. 그런데 이 대전제는 빈약한 필력으로 인해서 그다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을 별다른 근거 없는 쪽지 한 장에 휘둘려서 허둥지둥하는 바보들처럼 만들죠. 폭탄에 대한 묘사, 범인이 주는 압박, 그것을 사실로 믿은 사람들의 심리 묘사… 이런 게 좀 더 추가되었으면 좋았을텐데요.

캐릭터성도 납작합니다. 작중에 매력적으로 표현되는 캐릭터는 딱 둘이에요. ‘나’와 아야카와 씨죠. 그러면 범인이 누군지는 (작품 외적인 측면에서기는 하지만) 솔직히 뻔하지 않나요?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 작가의 두 작품 모두에서 이걸 정말 대충 넘기고, 이것이 굉장히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는 글을 재미없게 만들어요. 다른 “가설 범인”들을 좀 띄워 주고, 이런저런 인간 관계를 부여하고, 갈등을 투입하고… 이러면 훨씬 재밌을텐데요. 물론 이 작품의 경우 설정이 갈등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그걸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작법의 묘일텐데요.

그래서 그렇게 밝혀낸 반전이 대단히 탁월했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그냥 아야카와 씨가 밝혀낸 ‘진상’의 범인 자리에 아야카와 씨를 대입한 것뿐이죠. 아야카와 씨가 자백해서 그렇지, 사실 누구라도 가능한 페어입니다. 아마 그래서 1인칭 시점을 쓴 것이겠고, 아마 그래서 본인의 자백으로 마무리했겠죠. 그렇지만…

반전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왜 아야카와 씨여야만 했는가”에 대한 증거가 ‘나’의 서술 트릭에만 의존하는 것은 굉장히 실망스럽죠. 마지막에 어차피 아야카와 씨가 섬을 폭파시킬 거면, 아야카와 씨일수밖에 없는 핵심적인 증거가 남아 있고, 이것을 없애기 위해 터트린다는 식의 결말이 준비되어 있으면 아주 훌륭했을텐데, 머리카락이니 어쩌니 하는 게 맥을 탁 풀리게 만들어요.

서술 트릭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서 사용된 서술 트릭의 핵심적인 포인트이자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나는 이 범죄를 평생 마음에 안고 살아가야만 한다”일 거에요. 그런데 그게 하나도 강조가 안 됩니다. 작중에서 ‘내’가 범죄자를 알고 있다는 단서가 거의 드러나지 않아요. 책을 다시 펼쳤을 때 “아, 이 때 이래서 이랬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 서술 트릭의 핵심인데, 전혀 그런 구석이 없습니다. 그런 맛조차 없어서 좋은 “서술 트릭 책이다”라고 할 생각도 잘 들지 않습니다…만, 이 혹평은 그냥 제가 미리 의심을 잔뜩 품고 읽고 들어간 게 원인일지도요.

여러모로 작품에 미흡한 점이 보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미흡한 전개를 하나 꼽아 보면, 이틀째의 살인에서는 사체를 버릴 “준비”만 해 두고, 사흘째의 살인에서 실제로 “버리러 갔다”는 점에서 계율이니 뭐니는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눈치챘어야 하는데, 그걸 아야카와 씨를 제외하면 아무도 눈치를 못 챕니다. 패닉에 몰린 상황이었으니까, 라는 합리적 설명은 존재하지만, 그게 작품을 더 “재미있게” 만들 방법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죠.

결과적으로, 작품이 재미있었다면 이런 지적들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소재와 전개, 그리고 추리와 결말 자체는 사실 크게 나쁘지 않았어요. 필력의 문제입니다. [방주]보다 필력이 낫다는 것도 실은 칭찬이 아니니까요. 세 번째 작품 [낙원]에서는 크게 개선된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